책: 5·18의 미래를 기억하기

북챕터: 풀뿌리 운동 활성화를 위한 ‘가벼운 공동체’ 실험 전략 – 아시아연구소 공석기

한국 시민사회, 시민사회운동, 그리고 시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강한 한국 시민사회, 시민사회운동의 경험과 향수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디지털 세계화로 인해 구축된 정보 지배체제(information regime)에서도 유지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태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 플랫폼 경제 하에서의 ‘시민성’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독해, 그리고 시민으로 ‘다시 서기’이다. 한국 시민사회는 수직적으로나 수평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다양한 가치가 치열하게 경쟁 및 갈등하고 있다. 이익집단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엔지오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공공선을 위한 경쟁이 강화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으로 제공된 프레임 안에 갇힌 개인은 확증된 편향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와 협력 더 나아가 연대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그 결과 시민사회운동은 왜소화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사회운동의 ‘과잉사회화’로 인해 ‘사회운동사회(social movement society)’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낳고 있다(Meyer & Tarrow 1998). 누가 사회운동 전략과 전술을 동원하고 있는가?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집단의 이권을 위해 모두가 사회운동 전략을 동원하는 사회운동사회가 되어 사회운동의 진정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시민은 이익집단, 사 회운동, 엔지오의 경계를 비판적으로 독해하지 못함으로써 反운동 프레임과의 갈등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은 자신의 역량과 권위의 원천인 도덕성, 책임성,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한 결과 광의의 시민사회 영역과의 안정적인 연대의 틀을 구축하지 못한 채 소수의 사회운동 집단으로 축소되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사회 운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시민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성(civility)을 갖춘 시민’ 을 다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결코 시민성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주민에서 시민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공석기·임현진 2020). 그런데 주민과 시민의 구별된 삶을 관념 적으로만 이해하고, 시민으로서의 참여가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주민은 다시 개인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시민은 자본주의, 소비주의, 디지털 혁명, 정보지배체제와 알고크라시(algocracy)의 부상으로 인해 개인으로 분절과 고립되고 있어 시민으로 다시 서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공석기·정수복·임현진 2023; Lim & Kong 2020).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풀뿌리 운동이 개인을, 주민을 시민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다수가 공공선을 주장하는 광의의 시민사회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 혹은 지방의 시민사회운동은 공공선을 지향하는 거버넌스의 덫으로 인해 협치로 포섭되어 ‘운동의 쇠락’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혁명과 소셜미디어는 ‘개인의 시대’를 촉진하고 있다. 개인은 사회문제를 공공이 아닌 개인의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만드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관리와 통제를 비판적으로 독해하지 못하고 있다. 분절과 고립된 개인이 가상으로 연결된 디지털 플랫폼 공간에서 구체적인 장소로 나와 서로를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절실하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결국 개인을 주민에 서 시민으로 다시 서는 과정이기도 하다.

요컨대, 풀뿌리 지역에서 고립된 개인 혹은 주민이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 이상 개념과 아이디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 즉, 공동의 참여 경험을 통한 ‘시민권’을 구현하는 과정이 풀뿌리 차원의 시민사회 운동을 활성화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 저자는 시민권을 구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전통적인 시민사회운동 조직보다는 풀뿌리 차원의 ‘가벼운 공동체’(light community) 구성 전략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가벼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주제와 내용은 지역 회생에서 돌봄까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풀뿌리 운동의 핵심 원리는 민주주의이며, 작동 메커니즘은 가벼운 공동체 구성 전략이다. 그 가능성을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노력을 시론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